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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식품으로 암 예방한다.

서울 등록2005-01-12 조회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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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으로 암 예방한다

암으로 인한 사망요인 중 약 35%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과 관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암과 유방암은 육류와 지방섭취가 많은 북미나 유럽국가에서 그 발생률이 높은 반면, 곡류와 야채를 주식으로 하는 남미와 동양에서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역학적 연구결과는 음식과 암의 연관성을 잘 설명해준다.

식품에서 추출한 몇몇 발암(의심)물질들을 실험동물에 투여하면 종양이 생기고 암세포의 증식이나 전이를 촉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식품에는 암의 발생이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는 성분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1991년부터 하루 과일과 야채를 다섯차례 이상 섭취함으로써 암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자는 취지의 ‘Five-A-Day for Better Health’라는 캠페인을 꾸준히 벌여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이 범국가적인 캠페인에는 미국 정부를 대표하여 국립암연구소, 미국암협회, 비영리소비자단체, 식품업계가 동참하고 있다.

이 캠페인이 처음 시작된 1991년 당시에는 미국인 중 겨우 8%만이 하루 5서빙(1 서빙은 사과 반쪽, 주스 한잔 정도의 양에 해당) 이상의 과일과 야채를 섭취하였으나, 지금은 무려 5배나 증가한 약 40%의 국민들이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암예방 효과를 갖는 것으로 확인된 식품은 마늘, 콩, 생강, 양배추, 브로콜리, 녹차, 토마토 등 40여종에 이른다. 많은 연구를 통해 섬유소나 비타민, 미네랄 등이 암의 발생률을 낮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녹황색 채소나 과일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항산화 비타민들이나 베타카로틴 등의 비타민 전구물질들의 암예방 효과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야채나 과일에는 항산화 비타민 외에도 수많은 화합물들이 들어 있다. 비록 영양적인 가치는 비타민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파이토케미컬’로 불리는 이들 식물화학성분의 암예방 효과는 오히려 항산화 비타민들보다 우수한 경우가 많다. 이들 파이토케미컬은 식물의 2차 대사산물로서 그 중에는 해충이나 주변의 동물 또는 자외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어물질들이 대부분이다.

식품에 들어 있는 이런 물질을 이용해 암에 대한 방어능력을 강화시키려는 ‘화학암예방’이 최근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암환자들에게 기존의 화학치료요법과는 달리 상당히 효과적이고 실리적인 방법으로 부각되고 있다. 화학암예방제는 독성이 없거나 있더라도 극히 미약해야 하고 다수의 대중에게 염가로 보급될 수 있도록 분리나 합성이 용이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류가 오랜 경험으로 안전성이 검증된 식품화학성분들이야말로 화학암예방제의 좋은 후보물질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는 항암효과가 탁월한 식품화합물들을 비타민처럼 정제나 캅셀로 만들어 상시 복용함으로써 암의 발생을 억제하거나 최소한 그 시작이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몇 생명공학 회사들은 식품화합물을 이용한 암예방제 개발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이는 막대한 수요가 기대되기 때문이며, 그 효능만 검증된다면 당장 큰 인기를 끌 것이 틀림없다. 외국의 경우 이미 일부 식품화학성분들의 경우 암예방 효능을 검증하기 위한 임상실험이 완료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인간유전자 지도의 완성과 ‘단일염기다형성’에 대한 분석법의 발달로 암에 대한 개인간의 감수성 차이를 결정짓는 특정 유전자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유전적으로 특정 암에 걸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의 경우, 그 암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는 맞춤형 식품화합물들을 섭취해 적극적으로 암을 예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식품이 이렇게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예방을 위한 의약품으로 활용될 단계에 이르고 있어 최근에는 식품의약품을 의미하는 ‘뉴트라슈티컬’ 또는 ‘파이토파마슈티컬’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서영준(서울대 약대 교수.생화학)

세계일보 2005-01-06 18:33